3년간 업무 외적으로 원했든 원치 않았든 다양한 경험을 하게되었고,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종종 가졌으나 정리한적이 없어 이제라도 남겨놓고자 합니다.


Chapter 1. 직무 전환 후, 첫 발걸음

새로운 회사엔 좋은 동료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항상 학습에 목말라있었고, 엔지니어로서 어떤 마인드셋으로 업무를 대해야 하는지 자연스레 알게 되었습니다. 학교에서 이론으로 배웠던 것들이 어떻게 추상화되어 사용되고, 기술이 사용자에게 가치를 "어떻게" 전달할 수 있는가에 대해 인지하게 되었습니다.

이 시간을 동료들과 함께 했던게 정말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기술들을 서비스에 접목해볼 수 있고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도록 방패막이가 되어주시는 시니어 엔지니어가 팀을 이끌고 계셨고, 함께 고민하고 선뜻 경험을 나눠주신 좋은 동료분이 계셨기 때문이죠. 덕분에 온실 속 화초처럼 안전하게 새로운 직무로 랜딩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 무렵 업무 프로세스와 방법론들에 대해서도 많은 실험을 해보고 경험했습니다. 이와 관련된 글은 여기를 참고하시면 됩니다.

이 회사에서의 시간이 점점 끝나갈 무렵 아쉬웠던 것은 서비스 차원에서 "어떤 일을 해야 한다"를 파악하기 쉬운 프로세스와 도구들이 갖춰져 있는데, "왜 이 일을 해야 하는가"를 생각해보면 의문이 많았던 점입니다. 또한, 구성원들의 피드백을 경영진이 수용하는 듯했으나 핵심을 비껴나가는 대처와 타운홀도 아쉬웠습니다. 이때부터 엔지니어들의 대거 이탈이 시작되었습니다.

제가 회사를 떠나기로 마음먹게 된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이 회사를 오게 된 이유. 함께 하고싶은 "동료"가 회사를 떠나기 때문이었습니다.

Chapter 2. 다시 새로운 곳으로

지금 생각해보니 다시 시장으로 나오게 되었을 때도 저는 운이 좋았습니다. 이전 회사 동료들이 여기저기 흩어졌고, 어떤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저를 좋게 봐주셨는지 함께하자고 말씀해주셨기 때문입니다. 면접을 거치면서 당락이 결정되고, 이 과정에서 아직 모르는게 너무 많아 알아가야 할 게 많다는 걸 깨닫고 설렜습니다. 새로운 회사를 고르게 된 이유 또한 "사람"이였습니다. 함께 더 일해보고 싶은 동료가 함께 합류하는 것이 어떻겠냐 제안했기 때문입니다.

새 회사는 변화무쌍한 과도기를 겪고 있었습니다. 조직 개편이 거의 매달 일어나고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며 문화와 일하는 방식을 바꿔나가고 있었습니다. 이 회사에서는 기술적인 것보다는 "조직"이라는 것에 대해 느끼게 된 점이 많습니다.

많고 많은 일들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조직을 구성하고 문화를 만들어가는 건, 결국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조직이 어떠한 형태 / 방법론 / 슬로건 / 코어 밸류 / 업무 프로세스와 도구를 갖춰놓든 문화를 강제할 수 없고, 그 문화는 구성원들이 만들어 나가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책과 아티클에 있는 내용이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과 구성원들에게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않을 뿐더러, 각각 그 내용을 이해하고 있는 깊이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는 같은 내용을 읽고 다른 방향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왜 이런 문제가 발생했는가를 생각해보니 구성원들끼리 "솔직하고 건강하게 의견을 주고 받고 맞서는 법"을 잘 몰랐던 것 같습니다. 그때의 상황은 아래와 같습니다.

새로운 팀에 이전 회사 동료들이 다수 합류했고, 합병된 회사의 구성원들, 기존에 엔지니어링 조직의 구성원들이 섞여 있는 상황에서 서로 알아가는 시간이 필요했지만, 비지니스적 방향과 팀의 목표를 정렬하는 동안 이 시간이 부재했습니다. 팀의 곪은 후에야 뒤늦게 워크샵을 진행하고 주제 없이 개인의 관심사에 대해 얘기하는 자리를 가진 적이 있는데, 그제야 개개인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관심사가 무엇인지 등에 대해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에서 스스로 보이지 않는 장벽을 가지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서로 잘 모르는데 건강한 대립이 가능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이번에도 퇴사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회사가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는 걸 알고있고, 사업의 인과관계도 명확하고, 정보도 투명하게 공유되고 있으며, 괜찮은 방향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감사하게도 남아있기를 바래주셨던 분들이 있었지만 스스로 환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이번엔 조직문화보다는 일에 집중할 수 있는 곳을 찾고자 했습니다.

Chapter 3. 폭풍 속으로, 그리고 다시 밖으로

새롭게 합류하게 된 회사는 상대적으로 규모가 컸고 조직의 성격 또한 뚜렷했으며 꽤 공격적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이 사업이 매력적이었던건 큰 파이를 잡아먹는 회사들이 있는데, 어떤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 점유율을 뺏어올지 궁금했기 때문에 합류를 결정했습니다.

이 회사에서 가장 무거웠던 마음의 짐은 "신뢰를 빌려 온 회사"라는 점입니다. 물론 채용 프로세스를 진행했지만, 직무 전환을 이전 회사 동료의 신뢰를 빌려서 온 회사였고, 어떻게 하면 이 신뢰 채무를 갚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이 무렵 "나의 성장 곡선은 완만해졌고 점점 뒤쳐지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갖게된 시점이기도 했고, 어느 방향으로 성장을 꾀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된 시점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성장을 꾀해보고 싶었던 것은 두 가지 갈래로 나뉘었습니다.

  • 새로운 도메인의 사업에 기여하고, 밑바닥부터 어떻게 사업을 도모하는지 의사결정과정을 보자
  • 매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피쳐에 기여해보자

첫 번째 같은 경우엔 많은 리소스를 투입하기엔 회사에서 부담스러워했기에 두 번째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데이터 기반의 의사결정과정을 눈으로 지켜보며 그 데이터를 쌓아가는 과정에 참여할 수 있었고, 새로운 도메인과 연관된 매출을 늘릴 수 있는 피쳐에 기여하게 되어 기뻤습니다.

행복은 잠시, 시장에 찬바람이 불고 겨울이 되었습니다. 공격적으로 진행한 사업으로 인해 회사는 어려워졌고 회사는 생존을 선택했습니다. 냉정하게 판단했을 때 제가 회사를 나오는 것이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전까지 빛을 보지 못한 코드가 많았지만, 이번엔 좀 뼈아팠습니다. 그토록 경험하길 원했던 비지니스에 임팩트를 줄 수 있을 것 같은 기회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또 한번 회사를 나오게 되었습니다.

Chapter 4. 그리고 지금

지금은 개인적인 거사를 앞두고 있고, 체력적으로 지친 상태라 쉬면서 자신을 되돌아 보는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글을 쓰고 나니 정말 운이 좋았구나와 함께 나는 여태까지 동료들의 신뢰를 빌려 과대 포장되어있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의 좋았던 제 모습이 그분들의 기억에 남아있기 때문이겠지만, 자신의 곳간을 더 키우고 채워야 한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이 기간 동안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엔지니어로서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은지에 대해 고민해보는 시간을 좀 더 갖고 나아가고자 합니다.